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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티셔츠에 검은 재킷, 툭툭 말려 대충 고정시킨 듯한 머리카락…. 적당히 수수하고, 적절히 예의 갖춘 모습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키(190㎝)를 새삼 확인시키지 않았다면, 어깨가 좀 넓은 보통 체격일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큰 키에 작은 얼굴, 10등신이 넘을 듯한 비율, 딱 ‘요즘 스타일’ 배우상이다.
‘190cm 문짝남주’, 해외에선 ‘전하’로 불리는 남자 바로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폭군의 셰프’로 가장 주목받는 스타에 이름을 올린 배우 이채민(25)이다. 그는 극 중 폭군이자 절대 미각인 군주 이헌을 맡아 과거로 타임슬립한 미슐랭 3스타 셰프 연지영(임윤아)과 애틋한 사랑을 안전 검증 릴게임
일궈가는 인물이다.
역사 속 실존 인물을 연상시키는 배역이지만, 흉폭한 모습보다는 더할 나위 없이 유쾌하거나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상처와 트라우마에 지극히 고독하고 번뇌하다가, 내면의 결핍을 음식과 신뢰, 또 무한 애정으로 치유하며 그만의 이헌을 재창조했다.
드라마 ‘폭군의 셰프’가 지난달 28일 최종화 시청률 최고 250만원재테크
0%를 기록하며 ‘용두용미 드라마’라고 불리고, 또 해외에서도 2주 연속 넷플릭스 글로벌 TV쇼(비영어) 부문 1위에 오르며 K드라마 신드롬을 이어간 데엔 ‘임윤아 장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킬 만큼 로맨틱 코미디에 최적화된 임윤아의 연기력 못지않은 이채민의 맹활약이 뒷받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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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폭군의 셰프' 포스터


◇대체 배우? 대체 불가 배우!
음식 앞에서 눈을 반짝일 때는 호기심 충만해 아직은 덜 여문 듯한 소년 같은 순수미를 뽐내다가도, 살짝 끝이 올라간 듯한 눈매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 근육으로 실룩거리면, 진한 야성미가 화면에 흐른다. 진정 사랑하하락장
는 사람을 향해 그 누구보다 투명하고 솔직한 눈빛으로 성큼 다가설 때는 이토록 고혹적일 수 없다. 단지 그가 한복 앞섶을 풀어헤쳤기 때문이 아니다.
안하무인 흐트러진 모습은 이헌의 강퍅했던 속내를 드러내는 연극적 장치다. 연지영과의 사랑이 무르익으면 익을수록 그의 옷매무새는 단정해진다. 한복 깃을 야무지게 여미는 모습 하나로, 자신과 자신빙그레 주식
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내던지는 과단성 있는 행동을 예고한다.
절절한 눈빛으로 상대와 교감하는 입체적인 내면 연기는 이헌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원래 배역이었던 박성훈의 하차로 촬영 20여 일 전에 긴급히 합류하고, 촬영 중도에 본격 투입된 ‘대체 배우’에서 이젠 ‘대체 불가 배우’로 거듭났달까.
‘이채민이 곧 이헌이고, 이헌이 곧 이채민’이었던 그 순간을 그와의 인터뷰 시간에서도 포착할 수 있었다. 최근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고등학생 시절 모의고사에서 대부분 1등급을 받았다는 ‘모범생’ 모습 그대로 모범 답안을 이어가고 있었다.
먹는 장면에서 만화적인 요소가 가미되다 보니 그에 적절한 연기를 위해 각종 애니메이션이나 먹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 드라마를 참고한다거나, 뒤늦게 투입된 터라 승마나 서예같이 따로 배워야 할 장면에 연습할 시간이 부족해 틈틈이 연습해가며 촬영장에서 또 실전처럼 연습을 쌓았다는 얘기 같은 것 등이다.
음식을 일일이 먹으면서 연습할 수 없기 때문에 껌을 씹거나 사탕을 먹으면서 최대한 극적인 표현력을 키웠다고 했다. 단순해 보이지 않으려 눈을 어떻게 뜨는지, 손은 어떻게 움직일지도 연습했다. 마카롱을 먹는 장면에서도 ‘처음 느껴보는 단맛이 들어가면 머리가 핑 돌고 그런 느낌을 표현해야겠다’는 등 나름의 ‘연구’도 있었다. 특별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 연습했다”는 그의 말은 뭐든 적극적으로 경험하려는 극중 이헌과 똑 닮은 꼴이다.



[폭군의 셰프] 이채민/tvN


이헌이 이채민이고 이채민이 이헌 같은 순간이 가장 강하게 느껴질 때는, 그의 유혹적인 눈빛도 강단 있는 말투로 카리스마를 선사할 때도 아닌, 그 특유의 순수함이다. 아직은 때가 덜 묻은 듯한 ‘엉뚱미’와 ‘청춘미’가 극 중 이헌의 무게감을 강화한다.
이번 드라마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꼽히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였다.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온갖 감정이 터져 나오는 듯한 장면을 만화적으로 극화하기 위해 화면 한가득 그의 입이 클로즈업되는 장면부터 “부담스러웠다”고 혀를 내두르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평정심으로 자신을 눌렀던 그의 눈이 커지며 입도 함께 커졌다.



폭군의 셰프 3화 이채민/tvN





폭군의 셰프 3화 이채민/tvN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면, 약간 부끄럽기도 하면서 힘들었던 장면이 바로 사슴 고기 먹을 때였어요. 고기를 먹고는 화면이 갈대밭에서 혼자 앞섶 풀어 헤치고 웃는 장면으로 이어지는데, 그 부분에서 실제 갈대밭으로 들어갔어요.”
많은 장면이 CG로 이루어져 갈대밭 장면까지도 CG인 줄 알았던 3화 속 부분이다. 만화 ‘요리왕 비룡’ 같은 과장된 맛 표현이 이헌의 본격적인 시그니처로 자리 잡는 장면이기도 했다. 목소리가 들뜨고 빨라졌다. “사람들이 다 있고 멀리서찍는데데 혼자 앞섶 다풀어 헤치고 ‘아하하하’ 하면서서 이러고 있는데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사슴이 뛰노는 모습이 보이는 것처럼 ‘사슴이 지나간다’라고머릿속으로로 생각하면서 고개 돌리면서 하는데, 뭐랄까요.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이제는 모르겠다’라고한 때요.””
자신의 틀을 깨는 순간이라고 했다. “그 장면을 찍으면서 ‘내게 더 이상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과하면 과했지. 그래서인지, 현장에서 반응이 가장 뜨거웠던 장면이었고, 부끄러웠지만 가장 만족하면서도 재밌는 장면이었습니다.”







◇이채민이라는 개연성



배우 이채민. /바로엔터테인먼트


선이 깨지는 순간, 가장 솔직해진다. 그는 망가지려면 더 확실히 망가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쌓아온 만큼 무너졌을 때 배가 되는 매력이 있잖아요. 음식 앞에서는 되게 순진하고 천진무구한 인물이 돼야겠다 했죠. 이헌이라는 캐릭터가 단순하고 솔직한 인물이기 때문에 정치에서는 굉장히 엄격하고 근엄하지만, 맛있는 것 앞에서는 해맑은 소년처럼 보이면 더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일 것이라 생각했어요. 확실하게 구분 지으려 했던 것 같아요.”
이복동생인 진명대군의 병구완을 하면서, 연지영이 기력을 찾을 보양식을 바쳤을 때 그를 못 미더워하는 사람들을 향해 “대신 기미하겠다”고 나서는 장면에선 동생을 위하고, 연지영을 신뢰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숟가락을 들면서, 한편으로는 정말 그 음식을 먹어보고 싶은 욕망을 담을 것인가 말 것인지도 고민했다고 했다.
“침을 꿀꺽 삼켜야 하나, 하고 침을 삼켜도 보고, 그렇게 해보니 연지영에 대한 마음이라기보다는 음식에 대한 욕심일 것 같아 과한 것 같고, 이러한 장면을 찍고 또 찍으면서 최적화된 지점을 찾아갔던 것 같습니다.”
코믹 한 꼬집 더하기 위한 ‘브레인스토밍’은 대사 하나하나 이어졌다. 현대에서 온 연지영이 궁중에서 요즘 말을 대놓고 구사하는 통에, 과거엔 사용하지 않는 단어를 마치 말이 되는 듯 말하는 장면에서다. 대본이 있긴 했지만, 들리는 대로 말해보고 또 의견을 구하기를 반복했다.
“이탈리아어로 파스타”라는 말을 “이딸라로 뻐스타라”라고 다시 말하거나, “오뜨 퀴진”(프랑스 고급 요리)을 “어떡하지”라고 태연하게 따라 말하는 등의 부분이다. 이헌이 갖고 있는 코믹 본체를 생각해보면, 이채민의 탄력적인 연기력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2021년 tvN 드라마 ‘하이클래스’로 데뷔할 당시 68㎏이었던 체중은 현재 86㎏으로 앞뒤 숫자를 바꿨다. 운동도 좋아하지만 그만큼 먹는 것도 좋아해 몸이 불었다고 했다. 절대 미각을 자랑하는 군주 역할로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는” 드라마를 찍는 건, 마치 그를 위해 준비된 ‘석수라(夕水刺·당시 왕에게 바치는 저녁상을 높여 부르는 것)’ 같다.







그 많은 음식 중 특히 많이 먹었던 건 슈니첼.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돈가스와 비슷한 음식이다. 고기에 밀가루를 입혀 튀긴 것으로 돈가스보다는 얇게 펴 발라 바삭하게 굽는 요리다. 그는 온갖 방법으로 먹고 또 먹기를 반복했다고 했다. 한없는 ‘먹방’에 질릴 법도 한데, 누구보다도 맛있게 먹었다고. 그는 절대 미각 이헌 못지않게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다.
“튀김이 시간이 지나다 보니 처음처럼 바삭하지 못했지만, 같이 곁들였던 산딸기잼과 타르타르소스 같은 것이 너무 조화가 좋아서 계속 먹을 수 있었어요. 현장에서 반응이 좋으니 저도 뿌듯했죠.” ‘디테일 장인’ 장태유 감독 역시 “네가 좋아하는 음식이라 더 맛있게 먹는 것 같다”고 흐뭇해했다고 한다.
여기서 그의 인생 철학도 살짝 엿볼 수 있다.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돈가스만 먹으면 “그래 이러면서 사는 것이지” 하면서 힘을 낸다고 했다. 어떤 난관이 와도 극복할 만한 자신만의 ‘안식처’를 만들어놓는 것이다. 그걸 드라마로 실현했으니 그의 캐스팅을 두고 “10여 일의 기적”이란 말이 나오는 것 같다.



tvN 폭군의 셰프


이채민은 이번 드라마를 통해 코믹, 로맨스, 카리스마 액션 활극 등 누구보다도 다층적인 연기 스펙트럼을 선보였다. 인주대왕대비(서이숙)의 생일 잔치에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알고는 “성군은 이미 늦었다”고 폭주하거나, 월영루에서 연지영을 떠나보내지 않으려 절규할 때는 시청자의 마음도 실시간으로 뒤흔들어 버린다.
연지영과의 사랑을 확인하며 역사까지 바꿔버리는 판타지 캐릭터는 누군가의 환상 속에 존재했을 것 같은 이채민의 연기에 판타지가 강화된다. ‘말이 안 되는’ 내용도 그럴싸하게 보는 이를 설득하는 것이 ‘이채민이라는 개연성’ 덕분이다.
현대로 와서 정장까지 차려입고 연지영 셰프 업장을 찾아오는 이헌에 대해 별다른 설명도 없다. 여러 팬 반응에서 보듯 ‘이채민이니까’로 백마디 말을 대신한다. 주인공 연지영 역의 임윤아와 실제 나이 차이가 화면 속에서도 느껴지다가도 그가 연지영을 바라보며 짓는 미소에다 임윤아의 사랑스러움을 한 스푼 곁들이면 어느새 ‘그럴 수 있지’로 변해간다. 설득력을 부가하기 위해 ‘연지영 혹은 이헌의 꿈이었다’라는 식으로 끝맺었다면 “내 (시청) 시간 되돌려놔라”라는 불만이 쏟아졌을지도 모른다.